어험! 이리 오너라~ 과객인데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소?

◇경북 안동·청송지역 가볼만한 한옥 세채

아침이면 문살 아래로 햇살이 부서지고 비오는 오후면 닳아서 반들거리는 마루에 앉아 처마 밑으로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가 쪄온 고구마를 둘러앉아 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옥은 생활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헐리고 사라져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주거 형태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결국 우리 전통문화의 한 축이 사라져간다는 뜻.

올 가을엔 기품있는 기와집에서 하룻밤 머물며 자연과 전통 문화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양반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북 안동과 청송 지역에 자리한 한옥 세 채를 소개한다. 한옥하면 떠오르는 불편함은 개조를 해, 머무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고 최대한 옛모습을 지켜 다양한 공간 변형이 가능한 한옥의 우수성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안동 지례예술촌(www.chirye.com)=행랑채 문을 열면 임하호가 바라다보이고 새벽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에 자리했다. 한옥숙박의 원조인 곳으로 1664년 조선 숙종 때 지어진 의성 김씨 지촌 김방걸 종택으로 종택과 행랑채, 별채, 서당과 제청 등 10여 동 125칸 규모. 종택과 제청, 서당은 모두 경북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있다. 지촌의 13대 종손인 김원길씨가 1980년대 후반 임하댐 건설로 종택이 수몰위기에 놓이자 1986년부터 3년간 이곳으로 건물을 옮겨왔다.

애초에는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계획돼 시인 구상, 소설가 이문열, 수필가 유안진 등 문인과 예술인들이 머무르며 작품활동을 했지만 알음알음 우리 전통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소개되면서 일반인과 외국인에게도 개방, 현재는 일반 손님이 더 많다.

안동토박이인 주인 김원길씨는 문인으로 이 지역 문화에 해박하다. 저녁식사 이후, 김씨가 손님들과 함께 차 한잔을 마셔가면서 예술촌의 유래와 유교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약은 인터넷으로만 받는다. 온돌방이 17개로 숙박료는 방 규모에 따라 2만~5만원. 식비는 5,000~3만원이며, 따로 신청을 하면 한정식이나 장작불 바비큐도 맛볼 수 있다. (054)822-2590

▲안동 수애당(www.suaedang.co.kr)=수애당은 수애 류진걸씨가 1939년 지은 민가로 비교적 최근에 지어져 조선 말기의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한옥. －자형의 평면구조로 된 살림채와 고방, 솟을대문 등 총 3동 29칸 규모로 역시 경북 문화재 자료로 지정돼 있다. 최고의 목재인 춘양목으로 뼈대를 만들고, 문살이 독특하다. 수애당 역시 임하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몰리자 지금의 자리에 다시 옮겨 지었다.

규모가 비교적 소박하고, 안동시내와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것이 장점. 지나치게 으리으리하지 않은 데다 마루에 올라서면 임하호가 펼쳐져 있다. 아궁이에 직접 군불을 지피고 고구마와 감자 등을 구워 먹을 수 있으며 짚신 만들기, 화전 만들기, 디딜방아 찧기, 맷돌 갈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온돌방은 11개로 4명이 머물 수 있는 사랑방은 8만원, 중간방은 5만~6만원. 2인이 머물 수 있는 작은 방은 3만~4만원이다. (054) 822-6661

▲청송 송소고택(www.songso.co.kr)=첩첩산중에 둘러싸인 고장 청송의 산자락에 자리한 송소고택은 해방 때까지 이 집은 송소 심호택이 1880년쯤 지은 건물로 민가로는 최대인 99칸 규모다. 대문채와 큰사랑채, 안채, 사당채로 이뤄져 있다.

그동안 지키는 이가 없이 방치되다가 지난해 경북도청의 지원을 받아 수리에 들어가 한 달 전 문을 열었다. 사랑채와 안채는 ㅁ자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행랑채, 별채, 후원, 솟을대문 등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깨진 기와를 박아넣은 꽃담과 낮은 굴뚝, 문고리,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지은 헛담이 재미나다.

특별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운영을 맡고 있는 박경진씨는 전통문화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이벤트가 가능한 공간으로 가꾸려 애쓰고 있다. 이미 2주 전에 독일의 한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방문해 뜰에서 공연을 했고 10월에는 세계의 민속무용과 스포츠 댄스 등 멋들어진 춤판을 벌여볼 계획이다.

군불을 피워보는 등의 체험은 직접 해볼 수 있다. 고택 마당을 거닐며 한옥의 동선을 느껴보는 것만 해도 한옥의 반은 이해한 셈이다. 방마다 마당이 있다는 게 특징. 담으로 구획된 마당이 9개나 있어 다른 숙박객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숙박요금은 2인 기준으로 방마다 가격이 다르다. 행랑채와 작은 방은 각 4만, 5만원. 사랑채는 7만~9만원선. 안채와 따로 분리된 별채는 18만원으로 가족단위로 머물 수 있다. 1인 추가시 성인 1만원, 초중고생은 7,000원 추가. 아침식사는 5,000원. (054)873－0234~5

제사 참관에 민속놀이도

한옥체험 프로그램 다채

한옥에서 멋스러운 하룻밤을 보내는 걸로 우리 전통문화를 안다고 말하는 건 큰 오산. 이들 한옥숙소에서는 숙박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더불어 안동지역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공간도 소개한다.

▲지례예술촌 제사 참석=주인 김원길씨가 종손인 까닭에 이댁에서는 설과 추석을 제외하고도 1년에 10차례의 제사를 지낸다. 제례의식과 음식, 복식, 사당 등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안동지역의 전통제례를 볼 수 있도록 일반인들의 제사참관을 허용하고 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해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함께 들면서 전통제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달에는 세 차례(6, 23, 25일)의 제사가 있다. 홈페이지를 참고한다.

▲송소고택 민속놀이 5종 경기=송소고택에서는 민속놀이 다섯가지를 묶어 투숙객이 함께 게임을 즐기는 ‘민속놀이 5종 경기’를 만들었다. 참가 가족별로 합계점수를 내서 순위에 오르면 기념품도 준다. 양발로 차기, 외발차기 등 제기차기 3종목, 새총으로 징을 맞추는 새총쏘기, 화살을 원통에 넣는 투호놀이, 일곱개의 조각으로 퍼즐을 맞추는 전통 두뇌개발놀이인 칠교놀이, 국궁 등으로 이뤄져 있다.

▲풍산 한지공장·유천 한지미술관=하회마을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풍산 한지공장은 전주와 더불어 내로라 하는 한지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경북 북부지역에 자라는 닥나무로 한지를 만든다. 한지의 제작과정을 견학할 수 있고 직접 한지뜨기 체험과 한지그림공예, 한지 탁본 등을 해볼 수 있다. 유천 한지미술관에서는 한지를 찢어 풀로 붙여 그린 한지화가 전시돼 있다. 물에 불린 닥나무를 틀에 넣어 직접 한지를 만들어보는 한지체험은 500원. 한지그림공예는 재료비를 포함 3,000원. 공장 견학과 미술관 관람은 무료다. (054)858－7007

▲안동예절학교(www.admanner.co.kr)=폐교에 세워진 안동예절학교는 안동의 유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크게 예절, 다도, 한문, 우리가락, 전통놀이, 한지공예 등으로 나뉘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전통배례, 한복 바로 입기, 차마시는 법, 식사예절 등 생활예절을 배우고 민요와 장구, 사자소학, 서예 등을 배운다. 당일부터 5박6일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으며 학생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 인사법과 식사예절을 배우는 당일 프로그램은 8,000원. 1박2일 프로그램은 2만7천원. 3일전 예약해야 한다. (054)841－0511

▷여행길잡이

▲교통=서울에서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서안동IC로 빠져나오고, 그밖의 지방에선 남안동IC로 빠져나온다.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영덕 방향으로 25분가량 달리다 지례예술촌 안내표지판을 따라 수곡교를 건너면 수애당이 나오고, 박곡마을을 지나 비포장산길을 20분가량 달리면 지례예술촌이 나온다. 송소고택은 서안동IC에서 빠져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방면으로 달리다가 진보4거리에서 청송·포항 방면으로 우회전해 31번 국도를 탄다. 파천초등학교를 끼고 우회전해 다리를 건너면 보인다.

▲먹거리=안동 헛제삿밥과 안동닭찜, 염장처리한 간고등어, 안동식혜가 유명하다. 보통 헛제삿밥 정식은 5,000원, 간고등어 정식은 6,000원선. 닭찜은 1만2천원. 고두밥에 무와 고춧가루, 엿기름을 버무려 발효시킨 안동식혜도 독특한 먹거리.

▲주변 볼거리=풍산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있는 봉정사가 유명하다. 퇴계의 얼이 서린 도산서원, 서애 유성룡의 위패를 모신 병산서원은 조선 사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영주가 가까워 부석사, 소수서원과 엮어 이 일대 유교문화와 우리 건축문화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다녀도 좋다.

〈윤민용기자 artemix@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3년 08월 26일 16:03:42